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닐스 보어 (문단 편집) == 생애 == 1911년에 트리니티 칼리지로 가서 [[조지프 존 톰슨]]에게서 지도를 받았으나 보어의 영어가 서툴렀고 톰슨의 무관심함으로 맨체스터 대학교의 [[어니스트 러더퍼드]]에게 가게 된다. 여기서 당시 최신 원자 모형이었던 러더퍼드 모형에 대하여 접하게 되면서 1913년에 자신의 원자 모형을 발표하게 된다. 큰 키, 큰 머리로 눈에 띄었다는 모양이다. 사진 중에는 배우 [[존 트라볼타]]를 연상시키는 사진도 있다. 운동도 즐기는 스포츠맨 타입이나 꽤 수줍어 했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26세 때의 그를 본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동료는 "소년 같다"고 평하기도. 중년 때는 후학들에게 꽤나 우러러 보였던 모양. 제자인 오토 프리슈[* Otto Robert Frisch, [[리제 마이트너]]의 조카이고 그녀와 함께 핵분열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는 편지에 보어와 만났던 일화를 쓰면서 "신이 내 코트 단추를 만졌다"라고까지 했고,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파인만]]은 회의장에서 보어를 만났을 때를 "거물들에게도 보어는 위대한 신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교과서에서 원자 모형을 제시한 공로만 나오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잘 모르지만 그 당시나 지금이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비견할 만한 물리학의 거장이다.][* 정작 파인만 본인은 보어 부자(父子)와 아이디어를 논의하면서 아니다 싶으면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이에요!"라고 말해서 이 위대한 신을 흡족하게 했다고 한다. 보어는 아들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저 친구]]를 눈여겨 봐 둬라. 내 말에 [[예스맨|'네, 네.'밖에 할 줄 모르는 얼간이]]들은 신경쓰지 말고."] 지금도 [[코펜하겐]]에는 보어 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다. 덴마크에서 유명한 과학자다보니 집도 근사한데, 덴마크 [[맥주]]회사인 [[칼스버그]]가 기부해줬다. 거기에 수십 년간의 관리비까지 그냥 지급해주어서 그의 후손들은 편하게 잘 먹고 잘 산다고 한다. 그의 아들 오게 보어도 197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고 평생 보어 연구소에서 소장 자리를 맡았다. 오게의 아들도 물리학자다. 그가 원자의 구조 외에 중요한 일을 한 것이 있다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모든 국가에게 개방정책 및 공동 관리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원자력의 폐쇄적 이용에 따른 [[핵무기]] 무한 경쟁시대를 우려했으며 이를 막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정치인들에게 계속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그의 예견대로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되었다. 그는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직접 만나며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지만, 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처칠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은 지금 정치를 하는 건가, 과학을 하는 건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여부는 정치적인 문제인데 보어가 과학적 입장만 고려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과학이 아니고 정치다.'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107번 원소 '[[보륨]]'의 이름은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